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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역기획서

붉은사막 역기획: 첫날 200만 장 팔고도 스팀 61% 폭망한 기획적 이유

출시 첫날, 트레일러를 수십 번 돌려보며 기다렸던 펄어비스의 신작을 위해 과감하게 연차를 썼다. 4K 모니터 너머로 쏟아지는 파이웰 대륙의 눈보라와 흩날리는 흙먼지의 디테일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정확히 4시간 뒤, 나는 스팀 라이브러리 창을 열어 '복합적(61%)'이라는 붉은색 글씨에 합류하며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출시 24시간 만에 200만 장 판매라는 경이로운 오프닝 스코어. 그러나 스팀 유저 평가 61%라는 처참한 낙제점. 이 극단적인 지표의 괴리는 유저들의 억까(억지 까기)가 아니다. '압도적 비주얼'이라는 마케팅의 최면이 풀리고, 날 것 그대로의 '시스템 기획'이 유저의 키보드와 마우스에 닿았을 때 발생한 필연적인 참사다. 그날 내 책상 위에서 벌어진 인지적 부조화를 기획자의 시선으로 역기획해보자.

액션의 쾌감을 죽여버린 '콘솔 퍼스트'의 오만함

"역동적인 콤보와 카메라 워킹을 그대로 이식하면 PC 유저도 환호할 것이다?"

초반부 튜토리얼에서 적의 멱살을 잡고 돌진해 벽에 처박는 액션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하지만 마우스를 쥔 내 손목은 곧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개발진은 게임패드(컨트롤러)의 아날로그 스틱에 맞춰진 묵직한 조작감을 PC 키보드와 마우스에 강제로 우겨넣었다. 락온(Lock-on) 시스템은 다수의 적이 등장할 때마다 마우스의 에임 이동과 처절하게 충돌했고, 콘솔 특유의 강제 카메라 보정(Auto-centering)은 유저가 원하는 시야를 억지로 뺏어갔다.

이것은 단순한 버그가 아니라 플랫폼 최적화(Platform Adaptation) 기획의 완전한 실패다. 마우스는 '정확한 포인팅'을 위한 도구이지, 스틱처럼 '밀어내는' 도구가 아니다. 아무리 모션 캡처 장인이 뼈를 갈아 만든 액션이라도, 유저가 누른 'W키'와 마우스 움직임이 0.1초의 딜레이와 끈적한 가속도로 피드백되는 순간, 액션의 쾌감은 '통제 불능의 불쾌감'으로 타락한다. PC 포팅을 단순히 '키맵핑(Key-mapping)' 수준으로 여긴 대가는 61%라는 차가운 숫자로 돌아왔다.

1억 불짜리 컷신, 하지만 나는 스킵 버튼을 찾고 있었다

"세계관이 방대하고 그래픽이 쩔어주면, 유저는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몰입한다?"

AAA급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들이 가장 흔히 걸리는 불치병이다. 맥더프 일행이 장엄한 음악과 함께 비장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화면 밖의 나는 하품을 하며 스마트폰을 켰다. 그들이 왜 슬퍼하는지, 왜 분노하는지 전혀 공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러티브 기획의 핵심은 텍스트의 양이나 컷신의 연출력이 아니다. 유저와 캐릭터 간의 서사적 닻(Narrative Anchor)을 내리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위쳐3의 게롤트가 피의 남작 퀘스트에서 보여준 처절함은 그래픽 때문이 아니라, 유저가 직접 남작의 발자취를 추적하며 감정을 쌓아 올렸기에 가능했다.

반면 붉은사막은 세계관의 매력을 유저 스스로 '발견'하게 두지 않고, 일방적인 컷신을 통해 '주입'하려 든다. 기획자가 유저의 개입을 차단하고 "우리 그래픽 쩔지? 우리 캐릭터들 멋있지? 여기서 감동받아!"라고 강요하는 순간, 유저는 관람객으로 전락한다. 관람객에게 컷신은 그저 게임 템포를 끊어먹는 유튜브 영상일 뿐이다. 눈은 즐겁지만 마음은 단 1mm도 움직이지 않는 서사의 공허함. 이것이 초반 환불 러시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코어 루프(Core Loop)를 잃다

"낚시도 하고, 채집도 하고, 퍼즐도 풀고, 공성전도 하면 자유도 갓겜이 되겠지?"

맵을 돌아다니다 보니 젤다의 전설에서 본 듯한 퍼즐이 나오고, 어쌔신 크리드식 파쿠르가 등장하며, 레드 데드 리뎀션급의 환경 상호작용이 튀어나온다. 개발진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미있는 요소"를 다 때려 넣고 싶어 했다는 욕망이 모니터 밖으로 흘러넘친다.

하지만 기획의 세계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와 동의어다. 이를 피처 크립(Feature Creep), 즉 기능 과잉으로 인한 핵심 뼈대의 붕괴라고 부른다.

전투의 텐션을 극도로 끌어올려 놓은 뒤, 갑자기 흐름을 뚝 끊고 나무를 타서 새알을 훔치거나 뜬금없는 피지컬 퍼즐을 요구한다. 각각의 미니 게임 퀄리티는 나쁘지 않지만, 이것들이 맥더프의 용병단 성장이라는 거대한 맥락 안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코어 루프(Core Loop)로 수렴되지 않는다. 화려한 뷔페식당에 왔는데, 랍스터와 마카롱과 김치찌개를 한 접시에 비벼 먹으라고 강요당하는 기분이다.

 

마케팅이 200만 장을 팔았지만, 기획이 1000만 장을 막았다

트레일러를 기가 막히게 뽑아낸 마케팅 부서와 영혼을 갈아 넣어 픽셀을 깎은 아트 부서는 제 몫의 200%를 해냈다. 첫날 200만 장이라는 지표가 그들의 공로를 증명한다.

하지만 게임의 궁극적인 생명력을 결정하는 것은 포장지가 아니라 그 안의 뼈대, 즉 기획이다. 붉은사막은 기술력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그 세계를 탐험해야 할 '모니터 앞의 사람'에 대한 심리적, UX적 배려에는 처참히 실패했다.

당신의 프로젝트 팀 회의실 벽면에 'AAA급 비주얼'이나 '압도적 스케일' 같은 단어가 적혀 있다면 다 지워버려라. 기획자가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할 단어는 단 하나, '유저의 경험(Player Experience)'이다. 수백억을 들인 거대한 월드도 키보드 W키를 누르는 손가락 끝의 불쾌함 하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 그것이 61%라는 숫자가 기획자들에게 남긴 가장 묵직하고 잔혹한 교훈이다.